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 중에서도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예술성과 시대성, 정치성과 미학성을 균형 있게 다루는 수상 기준으로 명성을 쌓아왔습니다. 특히 장르별로도 특정 흐름과 특성을 지닌 수상작들이 꾸준히 배출되며, 각 장르 내에서 ‘베니스 스타일’이라 불리는 고유의 미학적 기준이 형성되어 왔습니다. 본문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축을 이루는 드라마 장르와 최근 강세를 보이는 스릴러 장르를 중심으로, 베니스 수상작들을 시대적 맥락과 수상 이유를 통해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향후 영화 기획이나 분석, 비평에 실질적인 기준점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드라마 장르: 인간성과 현실을 통찰하는 내러티브
드라마 장르는 베니스 영화제의 핵심 장르로, 매해 경쟁 부문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황금사자상 수상작 대부분이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 베니스에서 주목받는 드라마 장르는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닌, 인간 내면과 사회 현실에 대한 성찰, 그리고 시대정신을 담아낸 ‘정제된 감정의 서사’에 초점을 둡니다.
1. Nomadland (2020, 감독 클로이 자오)
- 수상: 황금사자상 - 수상 이유: 자본주의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의 여정을 고요한 미장센과 진정성 있는 연기로 풀어내며, 사회 구조 속에서의 소외된 존재를 정서적으로 탐구함. - 시대 흐름: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 불안과 유랑의 감성을 상징적으로 대변.
2. The Shape of Water (2017,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 수상: 황금사자상 - 수상 이유: 판타지를 통한 이타주의 메시지 전달. 소수자, 약자, 비주류에 대한 공감 능력을 드라마 장르에 판타지를 혼합해 심미적으로 재구성함. - 시대 흐름: 트럼프 정권 시기 미국 내 혐오와 배제 담론에 대한 저항적 상징.
3. Roma (2018, 감독 알폰소 쿠아론)
- 수상: 황금사자상 - 수상 이유: 감독의 개인적 기억과 멕시코 사회의 구조를 미학적 영상으로 결합하며, ‘개인의 역사’와 ‘국가의 역사’를 섬세하게 병치시킴. - 시대 흐름: 개인 서사를 통한 정치적 메시지 전달의 흐름과 맞물림.
베니스는 특히 정적이고 사색적인 연출, 자연광 활용, 서정적 시선이 살아있는 드라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하되, 과잉 없이 품위 있는 접근을 한 작품을 높이 평가합니다.
스릴러 장르: 심리, 사회, 인간 조건을 교차하는 긴장 구조
베니스는 스릴러 장르에 대해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의 형식으로 풀어낸 ‘비주류형 서스펜스’를 주목해 왔습니다.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스릴러보다는, 인간 심리의 다층성, 사회적 맥락, 윤리적 질문이 녹아 있는 장르물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1. The Nightingale (2018, 감독 제니퍼 켄트)
- 수상: 심사위원 특별상, 신인배우상 - 수상 이유: 복수극이라는 전통적 구조를 식민주의 비판, 여성폭력의 역사와 결합해 스릴러를 사회비평적 텍스트로 승화시킴. - 시대 흐름: 미투 운동, 식민지 역사 재해석이 활발해진 국제 사회 분위기와 맥락을 공유.
2. Joker (2019, 감독 토드 필립스)
- 수상: 황금사자상 - 수상 이유: 코믹북 캐릭터를 통해 현대 사회의 불평등, 정신질환, 폭력 구조를 해체하는 철학적 접근. 스릴러와 사회드라마의 혼합. - 시대 흐름: 미국 내 사회 양극화와 대중의 분노 정서 반영. ‘주류에 대한 반감’의 아이콘으로 기능.
3. Bad Tales (2020, 감독 다미아노 디노첸초)
- 수상: 각본상 - 수상 이유: 교외 지역 중산층 가족의 일상 속 파괴적 긴장감을 미니멀리즘 연출로 구축한 예술적 스릴러. 불안과 폭력이 잠재된 평범한 삶을 조명함. - 시대 흐름: 유럽의 중산층 가치 해체, 가정 중심 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 반영.
이러한 스릴러 수상작은 공통적으로 스릴 요소를 이야기 구조의 중심이 아닌, 메시지 전달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베니스는 장르적 재미보다, 장르를 통해 드러나는 사회적 진실과 인간의 복잡성을 중심에 두는 평가 기준을 유지해 왔습니다.
시대 흐름: 장르 선택과 수상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베니스 영화제는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화제로, 장르적 경향 또한 사회, 정치, 문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정 시기에는 드라마가 강세를 보였고, 다른 시기에는 스릴러나 하이브리드 장르가 주목받았습니다. 이 흐름은 단지 ‘유행’이 아닌, 당대 관객과 비평가가 어떤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반영이기도 합니다.
1. 2010년대 초반 ~ 중반: 정치적 회고와 개인적 서사의 통합이 중심 (예: A Pigeon Sat on a Branch Reflecting on Existence, From Afar)
2. 2018~2020: 여성 서사, 소수자 이야기, 미투 운동과 함께 사회적 주제를 내포한 드라마와 스릴러가 강세
3. 2021~현재: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고독, 치유, 관계 회복이라는 정서적 흐름이 우세. 이와 동시에 정치적 메시지를 감성적으로 풀어낸 작품이 수상권에 진입
이처럼 베니스 영화제는 장르 자체를 평가하지 않고, 그 장르가 시대와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되었는가에 따라 높은 평가를 부여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장르 간 경계를 허물고, 드라마+스릴러, 다큐+극영화 등 혼합 장르의 실험이 빈번히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습니다.
결론: 장르의 선택은 곧 메시지의 방식이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장르는 단순한 이야기의 형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선언이며, 시대와 소통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드라마는 인간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장르로, 관계의 미세한 균열과 사회 구조를 탐색하며, 스릴러는 불안과 긴장을 통해 인간 조건과 윤리의 경계를 드러냅니다.
베니스가 장르를 평가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장르 그 자체보다, 장르의 재해석 능력을 중시한다
- 사회적 메시지와 인간 심리를 정교하게 연결하는 구조를 선호한다
- 관습을 답습하지 않고, 장르의 형식을 새롭게 제시한 작품을 높이 평가한다
결국 베니스 영화제에서의 수상은 장르 선택의 정답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장르를 어떤 시선과 감각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가에 대한 예술적 대화입니다. 드라마든 스릴러든, 그 안에 시대의 감정과 진실이 살아 있다면, 베니스는 언제나 그 작품에 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