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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중심으로 본 토론토 수상작 (대사완성도, 전개력, 구성기법)

by 꼬꼬뷰 2025.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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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중심으로 본 토론토 수상작 관련 사진

2024년 제49회 토론토 국제영화제(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IFF)는 단순히 영상미나 연출 전략뿐 아니라,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주목을 받으며 각 부문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좋은 영화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설득력 있는 캐릭터, 그리고 적절한 리듬을 가진 대사에서 시작됩니다. 이번 수상작 중에서도 특히 대사의 완성도, 전개력, 구성기법이 뛰어난 작품들이 영화 전문가 및 관객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2024 토론토 국제영화제 수상작 중에서 시나리오 측면에서 돋보였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대사 쓰기의 힘, 전개의 유기성, 서사 구성 방식을 상세히 분석합니다.

1. <Echo of Silence> – 절제된 대사, 감정의 공백을 메우다

수상 부문: 관객상, 최우수 작품상
장르: 휴먼 드라마
감독/각본: 사라 민델 (Sarah Mindel)

청각장애 청년이 실종된 뒤 가족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대사의 양을 최소화한 대신 시선, 공간, 침묵으로 감정을 전달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적은 대사 한 줄 한 줄이 관객의 감정을 흔들 만큼 강력한 완성도를 지녔다는 점에서 시나리오 작법의 정수가 드러납니다. 사라 민델 감독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물 간 대화가 없어도, 보는 이의 심장을 찌를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느냐였습니다.” 이 영화는 대사의 부재를 서사의 장치로 활용합니다. 인물 간의 오해와 거리감을 표현하기 위해 침묵과 간격을 유지하고, 후반부 몇 줄의 대사로 감정의 모든 축적을 해소시키는 구성을 택했습니다. 특히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건네는 짧은 대사 “너는 들을 수 없지만, 나는 항상 너를 들으려 했어”는, 전체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집약해 냅니다. 시나리오 구성은 전통적인 3막 구조를 따르면서도, 개막 전환이 감정적 전환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점이 특징입니다. 서사의 축을 '사건'이 아니라 '관계 변화'에 두었다는 점</strong에서, 이 작품은 감정 중심 시나리오의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 <The Vanished Tongues> – 에세이적 구조, 서사의 리듬 실험

수상 부문: 플랫폼 프라이즈 심사위원상
장르: 사회 드라마 / 실험극
감독/각본: 마르첼로 루이즈 (Marcelo Ruiz)

<The Vanished Tongues>는 사라져가는 민속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의 시점을 따라가는 작품으로, 시나리오 구성 방식이 전통적 내러티브와는 확연히 다른 실험적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시나리오 작법적으로 이 작품은 에세이적 구조 (Essayistic Structure)를 따릅니다. 즉, 사건 중심의 흐름보다는 인물의 감정, 인식, 철학적 질문을 축적해 가는 방식입니다. 감독은 내레이션과 실제 대사를 혼합하며 관객을 일종의 ‘심리적 다큐멘터리’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작품의 대사는 철학적 성찰과 시적 표현이 조화를 이룹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은 기록을 남기며 이렇게 읊조립니다:
“언어가 사라질 때,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시간도 함께 지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시대를 채집하고 있다.” 이러한 문장은 단순한 플롯 진행의 도구가 아니라, 영화의 세계관을 관객에게 직접 설명하는 시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특히 반복되는 문장 구조와 감정의 상승 곡선 없이 구성된 장면 전환은 관객의 ‘내적 감상력’을 시험하는 구조로 작동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시나리오의 기능을 ‘정보 전달’에서 ‘철학적 명상’으로 확장시킨 사례로, 시나리오 작법이 반드시 사건 중심이어야 한다는 기존 관념을 전복시킨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3. <Almost Normal> – 일상 대사의 리듬, 코미디 서사의 정교함

수상 부문: 베스트 코미디 시나리오상 (비공식 선정)
장르: 코미디 / 성장극
감독/각본: 마야 브랜든 (Maya Brandon)

코미디는 대사 중심 장르입니다. 그리고 2024년 토론토 영화제에서 가장 유려한 대사 리듬을 보여준 작품은 단연 <Almost Normal>입니다. 이 영화는 ADHD를 앓고 있는 주인공이 '정상적인 삶'을 목표로 자가개선 프로젝트를 벌이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립니다. 마야 브랜든 감독은 시나리오에서 말의 속도, 문장의 길이, 반응 타이밍을 철저하게 계산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는 장면은 일반적 설명이 아닌 농담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합니다:
“나는 어제도 집중 못 하고 오늘도 산만해. 내일은? 그건 모르겠어. 아마 내일 집중하면 그게 기적인 거야.” 이러한 대사는 정보 전달 이상의 캐릭터의 성격을 입체화하며, 장면의 분위기를 결정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서브 캐릭터들과의 대사 호흡입니다. 각 캐릭터가 자신만의 리듬으로 말하며, 장면마다 서로 다른 말투와 톤이 교차되면서 코미디 장르 특유의 말싸움 구조(Ping-Pong Dialogue)가 완성됩니다. 전개력 측면에서도 <Almost Normal>은 유기적입니다. 전체 90분 러닝타임 동안 반복되는 실패와 작은 성취의 구성이 완벽한 미니 아크(mini arc)로 연결되며, 마지막에는 감정적 정화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 영화는 “코미디 시나리오도 문학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젊은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2024 토론토 국제영화제 수상작들을 시나리오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트렌드가 도드라집니다:

  • 1) 말보다 말의 ‘자리’를 중요시하는 시대
    <Echo of Silence>처럼 대사를 아끼고 감정으로 서사를 쌓는 방식은,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고 해석력을 요구하는 새로운 시나리오 트렌드입니다.
  • 2) 내러티브의 해체와 확장
    <The Vanished Tongues>는 에세이적 구성으로, 서사가 꼭 인과적 전개만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뒤엎습니다. 관찰, 기억, 이미지 중심의 구성도 영화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 3) 대사의 정교한 리듬 설계
    <Almost Normal>은 대사를 통해 유머와 캐릭터를 완성하며, 코미디 시나리오가 얼마나 문장 중심의 예술인지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사례였습니다.

결국, 좋은 시나리오는 단지 잘 짜인 줄거리가 아니라, 감정과 리듬, 정서와 구성의 균형 속에서 만들어지는 정밀한 문장과 설계입니다. 토론토 영화제의 수상작들은 그 점에서 영상에 앞서 글의 힘을 보여주는, 강력한 영화적 설계도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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