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전 세계 영화 비평가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는 예술 영화의 중심지입니다. 특히 영화 평론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베니스 수상작은 단순히 ‘감상’의 대상이 아닌 ‘해석’과 ‘사유’의 훈련 텍스트로 기능합니다. 작품이 담고 있는 철학적 메시지, 사회적 맥락, 영화언어의 실험 등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비평적 감각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평론가 지망생에게 필수적으로 추천되는 베니스 주요 수상작들을 중심으로, 각 작품이 어떤 비평 포인트를 갖고 있는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스타일적 특징은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지를 상세히 분석합니다.
비평 포인트: 읽어야 할 구조, 짚어야 할 쟁점
평론가 지망생이 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단순한 서사 요약이 아닌, 그 이야기가 ‘어떻게 말해지는가’입니다. 즉, 영화의 구조, 시점, 편집, 리듬 등 '형식'의 층위를 먼저 읽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대표적으로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 (2020)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내러티브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을 ‘극적 사건’이 아닌 ‘삶의 반복’이라는 리듬으로 전달합니다. 비평적으로는 이 영화가 어떻게 ‘서사의 탈구조화’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소외를 조명하고 있는지를 짚어야 합니다. 또한 비전문 배우를 사용한 결정, 자연광 활용, 즉흥 연기 등을 통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는 점도 비평 포인트로 삼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파올로 소렌티노의 The Hand of God (2021)은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통해 이탈리아 사회와 가족 구조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영화와 삶의 경계를 탐색하는 주제 의식을 품고 있습니다. 평론가 지망생은 이 작품에서 인물의 감정 곡선을 따라가되, 카메라 워크와 조명의 선택이 어떻게 서사를 지탱하고 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베니스 수작을 볼 때는 다음과 같은 비평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는가 보다,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 서사는 왜 단절적이며, 그 구조는 어떤 의미를 시사하는가?
- 감독은 어떤 영화 언어(영상, 소리, 공간 등)를 통해 주제를 전달하는가?
메시지: 사회·철학적 질문과 인간의 조건
베니스 수상작은 주로 인간의 조건, 사회의 균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깊은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평론가 지망생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단순히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왜 지금 이 메시지가 이 방식으로 표현되었는가’를 해석해야 합니다.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로라 포이트러스, 2022)는 미국의 오피오이드 위기와 그것에 맞서 싸운 사진가 나넛 골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예술과 정치,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교차시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고발 다큐를 넘어, ‘기억의 정치화’라는 개념을 시각화합니다. 사진과 인터뷰, 아카이브 영상이 뒤섞이며 ‘개인의 고통이 어떻게 사회적 서사가 되는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Leviathan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비경쟁 초청)과 같은 작품은 권력과 종교,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복합적인 철학적 메시지를 러시아 사회의 비극적 리얼리즘을 통해 전달합니다. 이런 작품을 비평할 때는 텍스트 분석에 그치지 않고, 그 사회적 맥락과 영화언어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예지 스콜리모프스키의 EO (2022)는 동물의 시선을 통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전복시키는 작품입니다. ‘말 못 하는 존재의 시선’을 통해 인간 사회의 폭력성, 잔혹성, 무관심을 드러냅니다. 이는 평론가 입장에서 윤리적 영화 비평의 문을 여는 작품이며, 동물의 시점으로 서사를 구성하는 새로운 윤리적 프레임에 대한 비평적 고찰이 가능해집니다.
결국 메시지를 비평하는 데 있어 핵심은 단순히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주제가 왜 이 형식으로 말해졌는가?”, “이 형식은 어떤 윤리적 감각을 자극하는가?”라는 층위에서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스타일: 영화언어의 실험과 감각의 전략
베니스 수상작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영화 스타일의 다양성과 과감한 실험입니다. 스타일은 단순히 '보기 좋음'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과 사유를 전달하는 감각의 전략입니다.
예컨대 Undine (크리스티안 펫졸드, 2020 베니스 경쟁 부문)은 고전 신화를 현대 로맨스와 결합한 독특한 내러티브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감정과 이성, 신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서사적 구조를 통해 시적이고 몽환적인 스타일을 구현합니다. 평론가는 이처럼 장르 혼합의 방식이 어떤 정서적 효과를 유도하는지를 분석해야 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도망친 여자 (2020) 역시 베니스에서 주목받았으며, 그의 영화 스타일은 비전공자에게는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영화언어 분석 측면에서는 치밀한 구성이 숨어 있습니다. 고정된 카메라, 느린 줌, 반복되는 대사, 여백의 미 등은 ‘보여주지 않음’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를 실험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스타일이 곧 태도’라는 철학을 가진 연출로, 영화 평론에서 형식비평의 핵심 대상이 됩니다.
더불어 색채, 조명, 소리, 편집은 작품의 감정선과 서사를 동시에 작동시키는 핵심적 영화언어입니다. 평론가는 장면 구성에서 감정의 파동을 유도하는 요소를 구분하고, 그것이 인물의 내면이나 주제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비평적으로 추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지 스콜리모프스키의 EO는 극단적 색채 대비와 파편화된 컷 구성, 감정의 과잉 없는 정적 장면을 통해 실험성과 감각성을 동시에 획득합니다. 이것이 관객의 ‘해석 참여’를 유도하며, 영화적 사유의 공간을 넓힙니다.
결론: 비평적 시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볼 수 있는 수작들은 평론가 지망생에게 단지 좋은 영화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를 훈련하는 살아 있는 교과서입니다.
비평은 단순히 줄거리를 요약하고 별점을 매기는 행위가 아니라, 영화 속 형식과 주제를 긴밀하게 연결 지어 읽어내는 작업입니다. 영화는 단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말하느냐’의 예술이기 때문에, 평론가는 그 ‘어떻게’를 끝없이 질문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베니스 수상작을 통한 비평 훈련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안합니다:
- 형식은 메시지의 전달 수단이 아니라, 메시지 그 자체이다.
- 영화는 서사 이상의 감각적 경험을 설계한다.
- 영화비평은 분석이 아니라 ‘관점의 제안’이다.
따라서 평론가 지망생은 베니스 필독작들을 통해 영화언어의 다양성, 메시지의 다층성, 스타일의 실험성을 꾸준히 훈련하고 분석해야 하며, 자신의 비평 언어를 정제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비평은 단지 감상의 고급 버전이 아니라, 영화와 사회, 예술과 윤리를 연결 짓는 진지한 대화이기 때문입니다.